인생은 아름다워

치매 예방은 긍정적인 생각과 웃음

생각다 못해 시어머님보다 무려 열다섯 살이 많은 친정어머니를 모셔 오기로 했다. 친정어머니는 당시 여 든이 넘었을 때였다. 육체가 건강해도 80을 넘기면 상노인이었지만 치매 시어머님을 혼자 있게 하는 것보다는 안심이 되었다.
시어머니 간병에 나선 친정어머니
시어머님의 치매가 점점 심해져서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을 때였다. 특히 외출할 일이 있을 때가 가장 난감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업무처리도 할 수 없었다. 은행도 직접 가야 했고, 시장도 봐야 했다. 그럴 때마다 사리분별을 못하는 시어머님을 혼자 있게 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 전기콘센트, 가스 밸브나, 수도 등등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생각다 못해 시어머님보다 무려 열다섯 살이 많은 친정어머님을 모셔 오기로 했다. 친정어머님은 당시 여든이 넘었을 때였다. 육체가 건강해도 80을 넘긴 상노인이었지만 치매 시어머님을 혼자 있게 하는 것보다는 안심이 되었다. 친정어머니는 충청도 해안마을에 살던 전형적인 시골 노인으로 한일병합이 된 1910년에 벽촌에서 태어나 다섯 살이 되던 해 친모를 잃었다. 그 후 나의 외할아버지가 재혼을 했으니 어머니는 계모 밑에서 자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곱 살 되던 해, 소아마비를 앓은 후유증으로 왼손에 장애가 생겼다. 때문에 결혼도 아주 늦어 당시로는 출가를 포기할 나이인 서른 후반에야, 외동딸을 홀로 키우던 나의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 서른여덟에 오빠를 낳고, 5년 후 마흔셋에 나를 낳아 키웠다. 내가 아홉 살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으니 불구의 어머니는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그러나 친정어머니는 마음이 부자였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늘 이웃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먹거리라야 삶은 고구마나 면사무소에서 한 달에 한 번 극빈자 가정에 배포되는 원조밀가루 음식이 전부였지만 작은 것이라도 이웃과 나누는 것을 즐겼다.
친정어머니의 노래
특히 웃음이 많았는데 나는 어릴 때 친정어머니에게 제발 많이 웃지 말라고 당돌하게 채근하곤 했다. 몸도 불편한 엄마가 남의 눈에 하찮게 보일까 봐 어린 마음에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그러나 치매 시어머님을 간병하면서 웃음이 얼마나 큰 보약인지를, 긍정적인 성격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를 절감했다. 친정어머님이 나를 도와주기 위해 치매 시어머님의 보호자 노릇을 할 때였다. 시어머님이 막무가내로 조르기 시작하면 친정어머니는 마치 갓난아기를 다루듯 “사돈, 우리 노래나 하고 놉시다” 하면서 ‘사발가’, ‘태평가’, ‘농부가’ 등 노랫가락을 흥얼거렸다. 그리고는 어린아이처럼 깔깔 웃으시며 흉보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곤 했다. 친정어머니의 레퍼토리는 여남은 곡은 족히 되는 듯했다. 가난과 장애를 딛고 남매를 키울 때 한을 달래며 부르던 바로 그런 노래들이었으리라. 그 뒤로 시어머님은 친정어머님과 함께 있는 동안 노래를 해 달라고 항상 졸랐고, 나는 그 덕에 친정어머니의 노래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시어머님은 어릴 때도 유복하게 자랐고, 신체 건강했으며, 남편도 예비역 장성으로 가난하지도 않았고, 안정된 노후생활을 충분히 영위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런데도 웃음이 없고 항상 부정적인 성격으로 본인은 물론 주변까지 힘들게 했고, 끝내 중증치매로 고생하다 1996년 71세로 돌아가셨다. 반면에 친정어머니는 긍정적인 성격 탓인지 2005년 96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늘 웃음과 긍정으로 사셨다. 객관적인 사유들이 불평불만이라면 친정어머니의 삶은 어느 한 가지도 만족한 게 없었다.
글 문영숙 작가
역사의 변방에서 잊혀가는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 역사동화와 청소년소설 <무덤속의 그림><궁녀 학이> <아기가 된 할아버지><치매 마음안의 외딴방 하나><에네껜 아이들><검은 바다><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꽃제비, 영대><벽란도의 비밀청자><독립운동가 최재형><글뤽아우프 독일로 간 광부> 위안부소설 <그래도 나는 피었습니다><안중근의 마지막 유언><사건과 인물로 본 임시정부 100년>
• 2017년 1월부터 12월까지 <잊혀진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국방일보연재 총 49회
• 2019년 1월 3일부터 18일까지 임정수립 백년특집 <임정루트를 가다> 중앙일보 총 5회 연재 함
• 2019년 6월 대통령직속 임시정부수립, 3·1운동 100주년 추친위원단과 중앙아시아순방
• 2019년 8월 위안부소설 <그래도 나는 피었습니다> 영문판 <TRAMPLED BLOSSOMS> 출간
• 현재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http://www.choijaihyung.or.kr/bizdemo17707/)
•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ltee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