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스팟

골목 사이로 퍼지는
소곤거림을 마주하다

후암동 골목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시간이 잘 가고, 대단한 볼거리가 없어도 흥미롭다. 복작하지 않아 걷는 재미가 있는 후암동 골목은 계속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은근한 매력이 있다. 한 모퉁이를 돌아 만나는 풍경마다 소소하면서도 정겨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후암동 골목으로 안내한다.
. 노초롱 사진. 홍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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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겨운 동네
마을버스를 타고 ‘후암동종점’에서 내리면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은 108계단을 마주할 수 있다. 한눈에 봐도 꽤 길어 보이는 계단이지만 다행히도 108계단을 단숨에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어 한여름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건물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타는 엘리베이터는 어떤 느낌일지 한껏 기대감을 품고 기다리자 이내 1층에서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는 꼭대기까지만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지점에서도 멈출 수 있기 때문에 총 4개의 버튼으로 내릴 지점을 선택하면 된다. 덕분에 계단 옆에 사는 주민들 누구나 편하게 오고갈 수 있고, 구경 삼아 이곳을 찾은 이들 또한 중간에 내려 계단을 오르는 재미도 더할 수 있겠다. 108계단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제법 아기자기하다. 높은 빌딩이 많지 않은 후암동 일대의 집들이 오밀조밀 펼쳐져 더욱 정겹게 보인다.
108계단을 다시 내려와 후암동 카페 거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용산고등학교 사거리를 지나 후암로 동쪽 골목길로 접어들면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주택 ‘지월장(指月藏)’이 나타난다. 현재는 게스트하우스로 쓰이는 이곳은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고택으로, 철도사업을 하던 일본인 소유의 별장이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끝나면 다시 이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리라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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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멋이 어우러진 카페 거리
지월장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니 본격적으로 주택가가 나온다. 마실 나온 어르신부터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주택가의 소소한 모습을 이뤄낸다. 후암동의 골목 어디에서도 고개만 들면 남산타워가 보이기 때문에 분명 서울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울 같지 않은 소박함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새롭게 건물을 올리는 공사 중인 집도 있는 반면, 세월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역사의 흔적을 가진 집도 있다. 골목 사이마다 옛날과 오늘의 교차점이 번갈아 등장하는 느낌이다. 많은 사람이 붐비는 화려한 거리, 눈에 띄는 건물과 관광지를 찾는 게 아니라면 후암동 카페 거리를 추천하고 싶다. 가까이에 있는 이태원이나 경리단길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이곳은 한마디로 복작스럽지 않은 수수한 감성을 자아낸다. 그 이유를 찬찬히 짚어 보니 카페 거리라고 해서 대단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동네와 어우러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거리 전체가 꾸며진 느낌을 주는데, 후암동 카페 거리는 그곳과는 사뭇 다르다. 카페가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아 오히려 찾아가는 맛이 있다. 오래된 상점과 세탁소, 미용실 사이에서 카페를 발견하는 쏠쏠한 재미가 더해진다. 한낮이라면 조금 지칠 법도 하니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을 선택해 후암동 카페 거리를 산책해 봐도 좋겠다. 조금만 걷다 보면 금세 이 소소한 멋에 취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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