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On-Air

마을의 서사와 함께 걷다
후암동 두텁바위로
‘후암마중’

후암동 일대를 둥글게 감싸 안는 두텁바위로와 후암길이 만나는 지점에는 소월로와의 단차로 생긴 높다란 옹벽이 있다. 높고 커다란 벽면은 용산도서관에서부터 소월로까지 이어지는데 단조로운 축대 형태로 존재하다가 지난 5월 서울시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용산구에서 주관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이필립 작가의 ‘후암마중’을 통해 마을의 이야기 길로 재탄생했다.
글. 한경희 사진. 김인규
주민과 함께 꾸며간 마을 이야기
‘마중’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후암마중은 마을을 찾은 방문객을 다정히 맞이해준다. 마을 자신이 가진 역사를 소개하면서 말이다. 옹벽 하부에는 후암동의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스카이라인 변화를 형상화한 작품 ‘후암마중’이 길을 따라 이어진다. 문헌에서 후암동 일대를 처음으로 상세하게 묘사한 것은 「한성근방도」이다. 「한성근방도」가 발행되었던 1886년 조선 후기, 후암동은 여타의 동네들처럼 초가집과 기와집이 즐비한 고즈넉한 마을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과 도시 재건으로 점차 복구되며, 다세대주택과 빌라가 밀집한 현재의 후암동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후암동의 시간들을 스카이라인을 통해 볼 수 있다. 후암마중 중간중간에는 시기별 해설과 구간별 작품 설명이 삽입되어 이해를 더한다.
후암마중은 두텁바위로와 소월로가 마주치는 지점 즈음에서 마무리되는데 현재의 후암동 스카이라인이 끝나고 다양한 식물들이 심겨진 싱그러운 녹색구간이 나온다. 지역 내 초등학교인 삼광초등학교 학생들이 휴케라, 산수국, 밀사초, 감둥사초, 돌나물, 비비추, 백리향, 앵초 등 총 8종의 식물을 분배받아 자신의 집에서 정성껏 키운 후 가져와 꾸민 ‘후암초록’ 구간이다.
어린 손녀의 손을 잡고 후암마중 길을 산책하는 한 주민은 후암동에서 10년 넘게 살며 마을의 다양한 변화를 몸소 체감해가고 있는데, 마을의 지나온 역사를 시각적으로 담아낸 후암마중이 흥미로워 오고 가는 길에 눈길이 간다고 말한다. 특히 밤에는 옹벽에 조명이 들어와 그 실루엣이 더욱 운치 있다고 귀띔한다.
주민, 마을을 다시 만나다
자신이 사는 집을 실측하여 조립 가능한 모형으로 제작해주는 ‘후암마중×후암가록’에 참여한 제유진 씨도 후암동에서 오래 살며 무심코 지나쳤던 동네 골목길과 다양한 집들, 집 주변 자연 하나하나에 애착을 가지고 요즘 다시 보게 되었다.
“후암마중 길은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자주 지나다니던 길이에요. 우리 동네는 골목과 계단이 많아 저희끼리 108계단, 초록계단 등으로 별명을 붙여 부르곤 했어요. 도심 속에 있어도 주변에 공원과 녹지가 많은 데다 지대가 높아 조금만 언덕을 오르면 전망이 좋죠. 남산타워도 팔뚝만하게 보이고요. 후암동에서 나고 자랐지만 요즘 많이 생기는 예쁜 카페며, 집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동네 산책을 즐겨요.”
해설사와 함께 후암동의 지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후암산책’이라는 투어 프로그램도 마련되었는데 외지인뿐만 아니라 정작 후암동에 살며 후암동을 모르는 주민들을 위해서도 의미가 있다. 작가와 함께 주민이 참여하여 마을을 꾸며가고, 또 그 과정에서 주민은 다시금 마을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고 애착을 키우는 시간이 바로 후암마중의 작업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이제 여름이 끝나고 울긋불긋 단풍 옷을 입은 남산을 볼 차례다. 남산에 오르기 전 잠시 두텁바위로 후암마중에 들러 마을이 들려주는 따스한 환대를 받아보자.

‘후암마중’
위 치 두텁바위로와 후암로 34길의 교차지점부터 두텁바위로와 소월로가 마주치는 지점까지의 옹벽 하부에 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