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스팟

땡땡땡! 추억을 소환하다
한강로동 땡땡거리, 백빈건널목

서울의 최중심부인 용산역에서 불과 1㎞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철길건널목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새롭다. 1980년대 드라마 속 세트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낯설고도 익숙한 풍경 속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 한경희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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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땡, 낯설고도 묘한 순간
용산역에서 한강대교 방향으로 약 10분 정도 걷다 보면 일명 ‘땡땡거리’라 불리는 백빈건널목을 만난다. 이곳에서는 서울 도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 펼쳐지기에 동네 주민뿐만 아니라 이를 구경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까지 더해져, 꽤 많은 보행자들이 이 건널목을 드나든다.
바삐 걸어가는 회사원, 엄마 손 잡고 동네 구경 나온 어린아이, 한 짐 가득 싣고 배달 가는 오토바이, 줄지어 행렬하는 자동차들도 일순간 멈춰서는 시간, ‘땡땡땡’ 경보음이 울리면 차단기가 내려가고, 철도건널목 관리원이 나와 붉은 깃발을 펄럭이며 차량과 보행자를 통제한다. 아무리 바빠도 이 순간만큼은 모두들 차단기 앞에 멈춰서서 속히 열차가 지나가길 바라는 한마음으로 맞은 편의 서로를 멀뚱히 바라본다. 낯설고도 묘한 순간이다.
곧이어 ‘우르르릉’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압도적으로 등장하는 열차는 경의중앙선, ITX경춘선, 강릉행 KTX 등이다. 이곳은 복선전철화된 철로로 여러 개의 철로가 이 건널목을 지나가 하루 평균 300여 번의 열차가 통과하기에 거의 2~5분 간격으로 ‘땡땡땡’ 소리가 들려온다. 어떨 때는 양방향에서 달려오는 열차가 교행하기도 하고, 1분도 채 되지 않는 듯 짧은 간격으로 또 다른 열차가 통과해 차단기가 다시 내려오면서 건너던 자동차와 보행자가 허둥지둥 빠져나가며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광경이 생소한 젊은이들은 열차가 들어오면 휴대폰 카메라로 연신 셔터를 누르고, 삼각대까지 세워 작품 사진에 도전하는 이들도 있다. 한적한 서울 변두리도 아니고, 초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광경을 만난다는 건 퍽 인상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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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건널목,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풍경
이 건널목을 ‘백빈건널목’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선 시대에 백씨 성을 가진 정1품 서열의 빈이 출궁하여 이 근방에 기거하면서 이 건널목으로 행차했다 하여 그리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철도건널목을 중심으로 난 좁은 골목길들은 세월을 빗겨나가 80년대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골목길 따라 들어선 방앗간, 국수 가게, 세탁소 등의 허름한 간판과 외관이 동네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또 곳곳에는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하여 빈티지한 느낌의 카페, 전시관 등이 들어서 있고 허름한 골목길 뒤로는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해진 저녁 시간 백빈건널목의 야경도 이색적이다. 이런 근현대적 풍경 덕분에 이곳은 2018년 tvN <나의 아저씨>, 2021년 KBS <경찰수업> 등이 촬영됐으며 드라마나 영화, 뮤직비디오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오래된 맛집도 많아 평일에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나온 회사원, 주말에는 나들이 나온 젊은이들로 붐빈다. 새로 산 물건이 오랜 시간 속에서 세월의 흔적을 입으며 손때 묻고, 다듬어지며, 헐거워지고, 느슨해지면 비로소 편안해지는 것처럼 이곳의 풍경도 사람들의 마음에 그런 편안함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근사한 새 옷보다 자주 찾게 되는 우리들의 낡은 셔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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