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톡Talk

우리의 일상을 지켜낸 고마운 사람들
상이용사 김상두 씨

긴 역사를 거쳐오며 전쟁 한번 겪지 않은 민족이 어디 있겠냐마는 우리나라처럼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겪어온 역사를 가진 나라는 흔치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를 가슴 졸이게 하는 단어 ‘전쟁’. 그 끔찍한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우리를 대신해 묵묵히 전장으로 걸어갔던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한 사람, 김상두 씨를 만나본다.
글. 한경희 사진. 홍승진
4·3사건으로 형제 잃고 13살 소년가장으로 주경야독

아침이 되면 커피 한 잔을 내리고, 단출한 밥상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어 일터로 향하고, 저녁이면 동료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 기울이는 소소한 일상. 특별할 것 없는 우리들의 하루 모습이지만 이 평범한 일상은 사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해마다 6월이면 우리는 호국보훈의 달로 우리나라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위한 추모의 시간을 갖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것도 관성적으로 행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눈으로 보며 전쟁의 폐해와 참혹함을 다시 한번 깨닫지만, 전쟁을 직접 경험해본 이들에게는 그것이 더 큰 공포이자 평생의 트라우마다.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88세 노신사 김상두 씨는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고엽제 피해를 입은 상이용사다. 차관 마련 등의 경제적, 군사적인 이유로 베트남전에 참전해야 했던 우리나라는 5만 병력 규모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김상두 씨 역시 그때 차출되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제주 삼양동 출신의 그는 8남매 중 여섯째로 자랐지만, 제주 4.3사건으로 두 형을 잃고, 일본으로 건너간 누이, 병으로 아버지와 또 다른 누이들을 잃으며 졸지에 어머니와 여동생 한 명만이 남겨져 13살에 가장이 되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야간학교를 다녔던 그는 태권도를 꾸준히 배워 유단자가 되었다. 18살에 6·25전쟁이 발발했지만, 키가 작아 소집에서 제외되었다가 1955년 군에 입대하여 부산의 육군인쇄공창에서 문선병으로 보직을 맡아 6년간 근무 중 베트남전에 지명되어 5관구 소속 제5지구 인쇄소 보직으로 참전하게 된다.

눈앞 지뢰 폭격으로 무참히 희생되는 현장 목격

남편의 참전 소식을 들은 아내는 오열했다. 당시 아이 셋에 넷째를 임신하고 있던 아내를 두고 전장으로 가야 했던 김상두 씨는 마음이 착잡했지만, 나라의 부름이니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비전투요원이긴 했지만, 사선을 넘나드는 전장 바로 앞에서 각 부대에 인쇄물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았고, 부대원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며 1966년 7월부터 1년간 머물렀다.

“제가 베트남에 가 있을 때 아내의 득남 소식을 들었습니다. 딸 셋 이후 얻은 첫아들이었어요. 그 아들이 지금 57세가 되었으니 제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지 57년이 되어가는군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 아찔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생생합니다.”

부대 환경정비를 위해 인근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베트콩이 매설한 지뢰에 폭격을 당하는 앞차를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던 일, 야간 보초를 섰다가 습격을 당해 앞 부대에서 몇 명이 간밤에 희생을 당했다는 이야기 등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와 전장의 하루하루는 일상의 1년보다도 더 길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함께했던 전우의 현충원 묘지, 여전히 찾아가 참배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전우들이기에 김상두 씨에게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끈끈한 전우애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4명의 인연이 있다. 당시 그들은 일반 사병으로 하사관이던 자신보다 10살 이상 어린 부하들이었지만 이제는 그저 막역한 형, 아우 사이가 되었다.

“7명이 함께 만남을 지속해왔지만 3명은 세상을 떠나고 4명만이 남아 종종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권위의식을 가지고 사람들 대하지는 않아요. 군기가 살아 있던 당시도 저는 헌병 조사 한 번 받은 적 없었으니까요.”

윗세대에는 공경의 마음으로, 아랫세대에게는 친구처럼 동료처럼 격의 없이 대하니 지금도 지역사회에서 주민들과 좋은 관계로 지내오고 있다. 부부의 극진한 효심을 인정받으며 받게 된 효행상, 지역사회 헌신봉사에 대한 서울시장의 표창장 등 헌신적인 그의 삶은 여러 상패로 증명된다.

베트남전 당시 자신의 부대에 있던 사병이 말라리아로 순국하여 현충원에 안장되었는데 그는 지금까지도 매년 6월이면 그 병사의 묘를 찾아가 추모하고 있다. 전쟁은 먼 나라의 얘기도 케케묵은 옛이야기도 아닌 그 자신의 이야기이기에 그 참혹했던 일상을 여전히 기억하며 지금의 소소한 일상에 감사한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며, 누군가의 형이고, 또 누군가의 아우였던 그들이 어린 자녀들을 두고, 임신한 아내를 남기고, 연로한 어머니를 뒤로한 채 전장에 나가 목숨 걸고 지켜낸 지금의 일상. 김상두 씨를 포함한 우리 곁의 그 수많은 영웅들을 기억하며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6월을 맞이한다.